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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타노모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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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고타노모리 공원은 도쿄도 나카노구에 위치한 공원이다. 이 공원은 조몬 시대 유적, 중세 시대 사찰 및 저택 유적, 에도 시대 매사냥터로 사용된 테라야마 지역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1920년 결핵 요양소로 개원하여 1993년 폐쇄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현재는 2007년 개원한 공원과 인근 복지 시설, 간호 전문학교, 주택 단지 등을 포함하는 '에고타노모리' 마을로 조성되었다. 공원 내에는 하마미즈키 언덕, 사토야마 수림, 비오톱, 잔디 광장, 조절지 등 다양한 시설이 있으며, 런닝 코스도 갖추고 있다. 신에고타역에서 도보로 접근 가능하며, 주변 지역은 광역 피난 장소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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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타노모리 공원 - [공원]에 관한 문서
개요
공원의 정문
공원의 정문
유형공원
위치나카노구, 도쿄도, 일본
대중교통신에고타역
좌표35°43′49″N 139°39′57″E
면적60,224 m² (14.88 에이커)
개장1971년
명칭
한국어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본어江古田の森公園 (Egota no Mori Kōen)

2. 역사

에고타노모리 공원이 있는 테라야마 대지는 예로부터 조몬 토기가 대량으로 채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지의 매장 문화재 포장지 "나카노구 No.27 유적 ('''에고타 유적''')"으로 도쿄도 유적 지도에 등재되었다.[5] 2020년 현재의 유적명은 "에고타(혼다야마·테라야마·기타에고타·테라야마 북부·테라야마 남부) 유적"이다.[19]

에고타 유적의 발굴 조사는 5회 실시되었다. 먼저 1985년부터 대지 동쪽의 저지(구 기타에고타 공원 부분)에서 조정지 건설에 따른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대량의 조몬 토기나 옻칠 귀걸이, 목태 칠기 등 풍부한 유물이 출토되어, '''기타에고타 유적'''으로 보고되었다.[21] 그 후, 테라야마 대지상에서 실시된 발굴 조사는 에고타 유적의 이름 아래 1부터 4까지 넘버가 부여되었다. 에고타노모리 공원 정비에 앞서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에서 제1차, 제2차, 제3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21], 더 나아가 에고타노모리 공원 남쪽 인접한 국가 공무원 주택 부지에서 택지 조성 공사에 앞서 제4차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20]

에고타 유적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석기가 출토되었다.[21] 제4차 발굴 조사에서는 2만 년 이상 전의 토층에서 흑요석을 중심으로 하는 석기의 박편이 발굴되었다. 박편은 석기를 만들 때 돌을 깨뜨려 생기는 파편으로, 구석기인이 이 땅에서 석기를 제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흑요석은 이 지역 주변의 무사시노에서는 채석할 수 없기 때문에, 하코네·이즈·신슈 등의 원방에서 채석되어 이 땅으로 운반된 것으로 보인다.[20]

에고타노모리 공원 부지에서는 조몬 시대의 유물과 유구가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조몬 시대 중기에는 공원 대지 위에 취락이 넓게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공원 동쪽의 강가에 생업의 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1]

1985년부터의 기타에고타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이 유적은 조몬 시대 사람들의 생업의 장으로 이해되었고, 대지 위의 에고타 유적 본체에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21] 1996~1998년에 실시된 에고타 유적 제1차 발굴 조사에서는 조몬 시대 취락의 일부가 검출되었다.[21] 제3차 발굴 조사에서는 수혈주거지 2채, 토광 2기, 피트 6기가 검출되었고, 조몬 토기 조각 3,111점, 석기 321점 등이 출토되었다.[21] 제4차 발굴 조사에서도 대지의 남부에서 조몬 시대 수혈주거지 3동과 피트 269기 등 다수의 유구가 검출되었다.[23]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대지 위에 조몬 취락이 넓게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21]

중세 시대에 이 지역에는 사찰과 호족의 저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관련 유구가 발굴되었다.[24][5][29]

구전에 따르면, 과거 이 지역에 에고테라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5] 1477년 분메이 9년, 에도 성주 오타 도칸의 군세가 도시마 씨의 군세를 격파한 에고타하라 전투에서 도시마 씨는 에고테라 근처에 진을 쳤고, 전투 중 에고테라가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5][25] 메이지 시대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이 절산 동부의 잡목림을 개척했을 때, 오에이 시대(1394~1428)의 반비 2기를 포함한 반비와 석조물 파편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24] 2003~2004년 에고타 유적 제2차 발굴 조사에서는 중세 사찰 유적으로 추정되는 굴립주 건물 터, 해자, 화장터 등이 발견되었으며, 백자 사귀항아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5] 제4차 발굴 조사에서도 큰 도랑과 여러 번 재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굴립주 건물 터의 피트가 다수 검출되었다.[20]

절산대지 부근에는 오가와야시키라는 고쇼의 저택이 있었다. 구전에 따르면,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패망한 막부 중신 와다 요시모리의 자손이 귀농하여 덴쇼 연간에 이르러 오가와 이소에몬을 습명했기 때문에 오가와야시키라고 불렸다고 한다.[27] 1996~1998년 에고타 유적 제1차 발굴 조사에서는 절산대지 서쪽 저지대에서 저택의 일부로 보이는 유구가 검출되었다.[29]

절산대지가 성터가 아니냐는 질문도 있지만, 향토 사학자들은 그러한 사적은 없으며 환상의 에고타 성이라고 부른다.[30]

에도 시대에 이 지역은 '''테라야마''' 또는 '''오바야시''', '''오바야시노'''라고 불렸으며, 쇼군이나 다이묘의 매사냥터로 사용되었다. 인근의 도후쿠지가 겐로쿠 9년 11월에 다이칸에게 제출한 에고타 히카와 신사의 제지(면세지) 원서에 "옛날 오바야시 안에 절이 있었고, 그 때문에 지금은 테라야마라고 전해져 온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그 절은 에고지라고 전해진다. 오바야시라는 것은 신사의 진수림인 동시에, 과거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오바야시라고 불렀던 것으로 생각된다[24]

메이지 시대 초기의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의 지명은 에고타 촌의 자(아자) '''테라야마'''였다[31]。에고타 촌은 1889년에 다른 6개 촌과 합병하여 노가타 촌이 되었고[32], 테라야마는 노가타 촌의 에고타 자의 작은 자가 되었다[33]。메이지 시대의 테라야마는 넓은 대지에 집이 없고, 중앙은 평탄한 밭이었으며, 동부는 차밭이었다. 높이 솟은 대지 주변은 잡목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요한 무사시노의 구릉이었으며, 숲에는 여우나 토끼, 야생 조류 등의 야생 동물이 서식했다[24]。다이쇼 시대, 요양소가 생기기 전의 테라야마에는 떡갈나무졸참나무 등의 잡목림이 펼쳐져 있었다. 잡목림은 북쪽과 동쪽의 경사면에 있었고, 아래쪽에는 초가지붕에 사용하는 억새가 무성했기 때문에, 매년 주민 수 명이 그것을 베러 갔다. 그 시절에는 도로와 밭 사이에는 졸참나무 가로수길이 있었다[34]메이지 신궁의 진수 숲이 만들어졌을 때 테라야마의 숲에서 소나무 거목 4그루가 헌납(이식)되었다[24]

테라야마 대지의 기슭에는 나카아라이가와(에고타가와)의 맑은 물이 돌고, 논이 펼쳐져 있었다[24]。현재의 에고타노모리 공원 조절지의 부근은 '''테라야마시타'''라는 지명으로, 온통 논이었다. 테라야마시타를 관개하는 용수로는, 테라야마의 곶인 스자키 제방에서 에고타가와에서 취수하여, 테라야마의 동쪽 기슭을 흘렀다(후의 쇼와 시대의 수로 변경 공사로 에고타가와 본류가 됨). 테라야마시타를 포함한 에고타의 논 지대는 폭우가 내리면 항상 논 전체에 물이 찼다. 논밭도 둑길도 작은 길도 수몰되어 일시적으로 호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35]

1920년 5월 29일, 도쿄시 요양소가 이곳에 개설되었다.[36] 결핵 요양소, 이른바 '''사나토리움'''으로,[37] 도쿄 근교에서 공기와 물이 가장 좋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다.[36] 건설은 방화, 태풍, 하청업체 도산 등 어려움을 겪어 3년이 소요되었다.[36]

개설 당시 병상 수는 500개였으며,[38] 빈곤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되었다. 요양 기간은 원칙적으로 3개월이었고, 필요에 따라 6개월까지 연장 가능했다.[39] 당시 일본의 결핵 사망률은 현재의 100배 이상으로, '국민병', '망국병'으로 불릴 정도로 높았다.[40] 도쿄시 요양소 개설 첫 해, 퇴원자 246명 중 사망자는 192명으로 78%를 차지했다.[41]

요양소는 논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고지대에 위치하여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가졌다.[42] 도쿄 시는 공기 정화를 위해 건물 주변에 식물을 심었다.[7] 부지 동쪽과 북쪽 경사면 숲은 '''정원'''으로 이용되었고,[34] 정신적 위안과 대기 요법을 위해 꽃, 와도(臥堂)를 설치하고 원예, 재배에 힘썼다.[39] 대기 요법은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여 건강 증진을 꾀하는 방법으로, 이곳은 안정적인 대기 요법에 적합했다.[34][42] 산책로가 있었지만, 환자들은 규칙적인 산책을 하지 않았다.[43] 무라오 의사는 "병자는 답답한 기율보다 뒷산의 자유로운 공기를 즐긴다"고 기록했다.[34]

요양소 남쪽에는 소나무 숲, 뒤편에는 떡갈나무 숲이 있었다. 뱀이 많았으나 점차 줄었고, 환자와 직원은 표고버섯, 자연산 고구마, 송이버섯을 채취했다. 환자들은 뒷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불을 피웠고, 남녀 밀회 장소가 되기도 했다.[43] 요양소 빈터에는 '''노가타 묘포'''가 만들어져 공원 수목과 가로수를 재배했다. 미국에서 증정된 하이마즈키 번식용 원목을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34] 포토맥 강변 벚꽃 답례로 받은 하이마즈키도 길렀다.[2]

당시에는 결핵 감염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결핵 공포증'''이 만연했다.[44] 요양소 설치 반대 운동은 결핵 공포증의 발작과 같았다.[44] 1916년 부지 매수 시작과 함께 주민들은 결핵균 감염을 우려해 반대 운동을 일으켰고,[36] "백성들의 봉기"라고 불렸다.[30] 토지 매도 지주에게 제재를 가하고, 마을에서 따돌림하여 노이로제가 된 지주도 있었다.[36][45] 반대 운동은 주민들 사이에 앙금을 남겼고, 오랫동안 언급이 금기시되었다.[45] 도쿄시는 신도 건설 등을 조건으로 주민과 화해하고 요양소 건설을 시작했지만,[36] 1917년 8월 요양소 건물이 방화되었다.[46]

요양소 개설 후에도 주민들은 결핵균 공기 감염을 두려워하여 요양소 앞을 지날 때 입과 코를 막고 달려갔다.[47] 요양소 근처 무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44] 인근 초등학교 교장은 굴뚝 연기가 결핵균을 퍼뜨릴까 봐 무섭다고 했다.[44] 노가타 마을은 도쿄시 요양소를 격리 병원으로 간주했다.[48] 마을사에는 "본래의 취지는 병원균을 살포하지 않도록 환자를 일정 장소에 격리하여 시민 전체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48] 한편, 요양소 행사에 몰래 참여하거나 환자에게 물건을 파는 주민도 있었고,[43] 굴뚝 연기를 두려워했던 교장은 요양소 의사에게 결핵 강연을 의뢰하기도 했다.[44]

도쿄시 요양소와 같은 무료 결핵 요양소는 병상 부족으로 입원 대기자가 많았다.[49] 퇴원 후 재입원 신청이 많았고, 퇴원과 동시에 재입원 절차를 밟는 환자도 있었다.[49]

1923년부터 1924년에 걸쳐 철근 콘크리트 병동을 건설하던 중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여 임시 병동을 급조했다. 1926년 철근 콘크리트 병동 완공 후 임시 병동 부지는 환자 피난소로 사용되었다.[39]

1929년 수용 정원을 870명으로 늘렸지만 입원 대기자는 줄지 않았고, 1930년 확장 공사를 통해 1932년부터 300병상 규모 병동을 추가하고 유료 환자 제도를 도입했다. 유료 환자 정원은 250명, 1인당 1일 1엔 50전을 징수했다.[50] 당시 도쿄시 요양소 환자 1인당 1일 실비는 1엔 50전 전후였다.[51]

1935년 무라오 의사 저서에 따르면, 도쿄시 진료소 입원 대기자는 1,000명이 넘었고, 대기 중 사망자도 많았다. 가든 홈, 휴원, 베타니아의 집, 정풍원 등 인근 민간 결핵 요양 시설도 항상 만원이었다.[52] 이 중 '''가든 홈'''과 '''휴원'''은 무라오 의사가 관여했고,[53] '''베타니아의 집'''은 프로자크 신부가 창설, 운영했다.[54] '''정풍원'''은 현재 나카노 에고타 병원이며,[55] 코로나19 감염으로 유명해졌다.[56] 1936년에는 '''무사시노 료엔'''이 결핵 병원으로 발족했다.[57]

중일 전쟁 시작 (1937년) 후 결핵 예방법 개정으로 공립 결핵 요양소 수용 대상이 "요양의 길이 없는" 환자에서 "환경상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있는" 환자로 변경되었다.[58][59]

태평양 전쟁 전시와 종전 후, 1942년 도쿄시 나카노 요양소, 1943년 일본 의료단 나카노 요양소, 1947년 국립 나카노 요양소로 명칭과 관할이 변경되었다.[34] 이 기간 동안 결핵 요양소는 전국적으로 한산했다.[58]

종전 후, 일본의 결핵 사망률은 급감했다.[40] 1950년 스트렙토마이신 국내 생산 및 공비 치료 제도 도입으로 화학 요법이 보급되어,[60] 초기에는 결핵 환자가 요양소에 쇄도했다. 1951년 국립 나카노 요양소는 "요양소 입소, 2, 3년 기다려야 한다"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58]

1960년대 삼자 병용 요법 확립으로 결핵 근본 치료가 가능해져,[60] 요양소 입원 환자는 감소했다.[34] 1967년 4월, 국립 나카노 요양소는 10층짜리 신 병동을 건축하고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으로 개칭했다.[61]

1968년부터 1970년까지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남쪽 부지에 '''후생성 나카노 숙소'''와 '''에고타 합동 주택'''이 건립되었다.[62] 에고타 합동 주택은 각 성 합동 공무원 숙소로, 11개 동, 4~5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부지에는 피나무, 히말라야시다, 플라타너스, 대왕송, 주엽나무 등 수림이 있었고, 아이들은 사슴벌레, 풍뎅이, 꽃무지 등을 잡았다.[63]

1968년 도시 계획 "에고타노모리 공원"(약 3.4ha)이 결정되었다.[76] 1987년 4월, 기타에고타 공원이 홍수 조절지로 개조되어[77] 도쿄 도립에서 나카노구립으로 이관되었다.[76]

1993년 9월 말,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이 국립 국제 의료 협력 센터와 통합되어 폐쇄되었다.[38] 1996년 3월 8일, 나카노구·후생성·자경회의 삼자가 "구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의 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75] 광역 피난 장소, 도시 계획 공원, 도로 등을 정비하기로 합의했다.[75]

1998년 2월, 삼자는 "에고타노모리" 정비의 방향성에 대해 합의하고, 역사와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환경·경관·복지·방재에 배려하고 일체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75] 다음 달, 도시 계획 "에고타 공원"이 폐지되고, 새롭게 도시 계획 "기타에고타 공원"(6.0ha)이 결정되었다.[75] "기타에고타 공원"은 계획명이었고, 공원명은 "(가칭) 북부 방재 공원"이었다.[76]

2003년 4월, 나카노구가 병원 부지를 공원 용지로 취득하고,[76] 다음 달, 삼자는 "에고타노모리" 전체를 통일된 공간으로 경관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에고타노모리" 정비에 관한 기본 방침을 확인했다.[75]

2007년 4월, 에고타노모리 공원이 개원했다. 이는 기타에고타 공원 구역을 병원 부지로 넓혀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2] 구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의 수림을 살려[2] 구내 최대 규모의 수림을 남겼다고 한다.[6] 같은 날, 공원 남쪽에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와 도쿄 경찰 병원 간호 전문학교가 개업했다.[4][104]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부지를 공유하던 에고타 연합 주택과 후생노동성 나카노 숙소는 43,770m2 면적의 국가 공무원 숙소였다.[62] 2006년 7월, 이 부지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결정되었고,[91] 2007년에는 숙소 폐지와 함께 부지를 활용하여 마을 기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되었다.[62] 2008년 3월, 국가 공무원 숙소 부지를 시노노메의 UR도시기구 소유지와 교환하면서 '''에고타노모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91][92] 나카노구는 피난로 확보, 녹지 환경 보존, 양호한 주택 공급을 추진하도록 유도했다.[93]

2년 이상 거주자 이주 후, 2010년 12월에 숙소가 폐쇄되었다.[90][94] UR도시기구는 부지의 자연 환경 보전에 힘쓰겠다고 설명했지만,[95] 2013년 9월 택지 조성 공사 설명회에서는 중요 수목은 보존・이식하고, 그 외 기존 수목은 벌채한다고 설명했다.[96] 실제 공사에서는 많은 수목이 베어졌다.[94] 다만, 부지 동쪽 에고타 강변 수림은 에고타노모리 공원과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보존하고, 녹지, 산책로, 휴게소 등을 설치한 공원으로 정비한다고 했다.[96]

2013년 9월 택지 조성 공사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구 에고타 연합 숙소 부지("에고타 3초메 지구")는 2014년까지 UR도시기구가 택지 조성 공사를 하고, 2015년 이후 민간 사업자가 주택 건축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었다.[96]

2015년 3월, UR도시기구와 세키스이 하우스는 "에고타 3초메 지구" 사업 계획 개요를 발표하고, 분양 및 임대 맨션 등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녹지 활용"을 위해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연결되는 재래 수목 중심 식재로 새와 곤충들의 생태계를 배려한다고 밝혔다.[97] UR도시기구, 세키스이 하우스, 종합 도쿄 병원은 "에고타 3초메 지구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조직하고, 에고타노모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92] 이 프로젝트는 "다세대에 의해 길러지는 지속 가능한 지역을 만든다"는 콘셉트의 주택・의료・보육 시설 등의 복합 프로젝트였다.[98] 2018년 9월까지 시설군을 완성하고, 같은 달 23일에 "마을 열기"를 개최했다.[98]

2. 1. 조몬 시대 유적

에고타노모리 공원 부지에서는 조몬 시대의 유물과 유구가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조몬 시대 중기에는 공원 대지 위에 취락이 넓게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공원 동쪽의 강가에 생업의 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1]

1985년부터의 기타에고타 유적 발굴 조사 결과, 이 유적은 조몬 시대 사람들의 생업의 장으로 이해되었고, 대지 위의 에고타 유적 본체에 대규모 취락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21] 1996~1998년에 실시된 에고타 유적 제1차 발굴 조사에서는 조몬 시대 취락의 일부가 검출되었다.[21] 제3차 발굴 조사에서는 수혈주거지 2채, 토광 2기, 피트 6기가 검출되었고, 조몬 토기 조각 3,111점, 석기 321점 등이 출토되었다.[21] 제4차 발굴 조사에서도 대지의 남부에서 조몬 시대 수혈주거지 3동과 피트 269기 등 다수의 유구가 검출되었다.[23]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대지 위에 조몬 취락이 넓게 퍼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21]

2. 2. 중세 시대 사찰과 거관

중세 시대에 이 지역에는 사찰과 호족의 저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관련 유구가 발굴되었다.[24][5][29]

구전에 따르면, 과거 이 지역에 에고테라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5] 1477년 분메이 9년, 에도 성주 오타 도칸의 군세가 도시마 씨의 군세를 격파한 에고타하라 전투에서 도시마 씨는 에고테라 근처에 진을 쳤고, 전투 중 에고테라가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5][25] 메이지 시대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이 절산 동부의 잡목림을 개척했을 때, 오에이 시대(1394~1428)의 반비 2기를 포함한 반비와 석조물 파편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24] 2003~2004년 에고타 유적 제2차 발굴 조사에서는 중세 사찰 유적으로 추정되는 굴립주 건물 터, 해자, 화장터 등이 발견되었으며, 백자 사귀항아리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5] 제4차 발굴 조사에서도 큰 도랑과 여러 번 재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굴립주 건물 터의 피트가 다수 검출되었다.[20]

절산대지 부근에는 오가와야시키라는 고쇼의 저택이 있었다. 구전에 따르면,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패망한 막부 중신 와다 요시모리의 자손이 귀농하여 덴쇼 연간에 이르러 오가와 이소에몬을 습명했기 때문에 오가와야시키라고 불렸다고 한다.[27] 1996~1998년 에고타 유적 제1차 발굴 조사에서는 절산대지 서쪽 저지대에서 저택의 일부로 보이는 유구가 검출되었다.[29]

절산대지가 성터가 아니냐는 질문도 있지만, 향토 사학자들은 그러한 사적은 없으며 환상의 에고타 성이라고 부른다.[30]

2. 3. 테라야마 시대와 매사냥터

에도 시대에 이 지역은 '''테라야마''' 또는 '''오바야시''', '''오바야시노'''라고 불렸으며, 쇼군이나 다이묘의 매사냥터로 사용되었다. 인근의 도후쿠지가 겐로쿠 9년 11월에 다이칸에게 제출한 에고타 히카와 신사의 제지(면세지) 원서에 "옛날 오바야시 안에 절이 있었고, 그 때문에 지금은 테라야마라고 전해져 온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그 절은 에고지라고 전해진다. 오바야시라는 것은 신사의 진수림인 동시에, 과거에 절이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오바야시라고 불렀던 것으로 생각된다[24]

메이지 시대 초기의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의 지명은 에고타 촌의 자(아자) '''테라야마'''였다[31]。에고타 촌은 1889년에 다른 6개 촌과 합병하여 노가타 촌이 되었고[32], 테라야마는 노가타 촌의 에고타 자의 작은 자가 되었다[33]。메이지 시대의 테라야마는 넓은 대지에 집이 없고, 중앙은 평탄한 밭이었으며, 동부는 차밭이었다. 높이 솟은 대지 주변은 잡목림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고요한 무사시노의 구릉이었으며, 숲에는 여우나 토끼, 야생 조류 등의 야생 동물이 서식했다[24]。다이쇼 시대, 요양소가 생기기 전의 테라야마에는 떡갈나무졸참나무 등의 잡목림이 펼쳐져 있었다. 잡목림은 북쪽과 동쪽의 경사면에 있었고, 아래쪽에는 초가지붕에 사용하는 억새가 무성했기 때문에, 매년 주민 수 명이 그것을 베러 갔다. 그 시절에는 도로와 밭 사이에는 졸참나무 가로수길이 있었다[34]메이지 신궁의 진수 숲이 만들어졌을 때 테라야마의 숲에서 소나무 거목 4그루가 헌납(이식)되었다[24]

테라야마 대지의 기슭에는 나카아라이가와(에고타가와)의 맑은 물이 돌고, 논이 펼쳐져 있었다[24]。현재의 에고타노모리 공원 조절지의 부근은 '''테라야마시타'''라는 지명으로, 온통 논이었다. 테라야마시타를 관개하는 용수로는, 테라야마의 곶인 스자키 제방에서 에고타가와에서 취수하여, 테라야마의 동쪽 기슭을 흘렀다(후의 쇼와 시대의 수로 변경 공사로 에고타가와 본류가 됨). 테라야마시타를 포함한 에고타의 논 지대는 폭우가 내리면 항상 논 전체에 물이 찼다. 논밭도 둑길도 작은 길도 수몰되어 일시적으로 호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35]

2. 4. 결핵 요양소 시대

1920년 5월 29일, 도쿄시 요양소가 이곳에 개설되었다.[36] 결핵 요양소, 이른바 '''사나토리움'''으로,[37] 도쿄 근교에서 공기와 물이 가장 좋다는 이유로 선정되었다.[36] 건설은 방화, 태풍, 하청업체 도산 등 어려움을 겪어 3년이 소요되었다.[36]

개설 당시 병상 수는 500개였으며,[38] 빈곤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되었다. 요양 기간은 원칙적으로 3개월이었고, 필요에 따라 6개월까지 연장 가능했다.[39] 당시 일본의 결핵 사망률은 현재의 100배 이상으로, '국민병', '망국병'으로 불릴 정도로 높았다.[40] 도쿄시 요양소 개설 첫 해, 퇴원자 246명 중 사망자는 192명으로 78%를 차지했다.[41]

요양소는 논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고지대에 위치하여 후지산을 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가졌다.[42] 도쿄 시는 공기 정화를 위해 건물 주변에 식물을 심었다.[7] 부지 동쪽과 북쪽 경사면 숲은 '''정원'''으로 이용되었고,[34] 정신적 위안과 대기 요법을 위해 꽃, 와도(臥堂)를 설치하고 원예, 재배에 힘썼다.[39] 대기 요법은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여 건강 증진을 꾀하는 방법으로, 이곳은 안정적인 대기 요법에 적합했다.[34][42] 산책로가 있었지만, 환자들은 규칙적인 산책을 하지 않았다.[43] 무라오 의사는 "병자는 답답한 기율보다 뒷산의 자유로운 공기를 즐긴다"고 기록했다.[34]

요양소 남쪽에는 소나무 숲, 뒤편에는 떡갈나무 숲이 있었다. 뱀이 많았으나 점차 줄었고, 환자와 직원은 표고버섯, 자연산 고구마, 송이버섯을 채취했다. 환자들은 뒷산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불을 피웠고, 남녀 밀회 장소가 되기도 했다.[43] 요양소 빈터에는 '''노가타 묘포'''가 만들어져 공원 수목과 가로수를 재배했다. 미국에서 증정된 하이마즈키 번식용 원목을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34] 포토맥 강변 벚꽃 답례로 받은 하이마즈키도 길렀다.[2]

당시에는 결핵 감염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결핵 공포증'''이 만연했다.[44] 요양소 설치 반대 운동은 결핵 공포증의 발작과 같았다.[44] 1916년 부지 매수 시작과 함께 주민들은 결핵균 감염을 우려해 반대 운동을 일으켰고,[36] "백성들의 봉기"라고 불렸다.[30] 토지 매도 지주에게 제재를 가하고, 마을에서 따돌림하여 노이로제가 된 지주도 있었다.[36][45] 반대 운동은 주민들 사이에 앙금을 남겼고, 오랫동안 언급이 금기시되었다.[45] 도쿄시는 신도 건설 등을 조건으로 주민과 화해하고 요양소 건설을 시작했지만,[36] 1917년 8월 요양소 건물이 방화되었다.[46]

요양소 개설 후에도 주민들은 결핵균 공기 감염을 두려워하여 요양소 앞을 지날 때 입과 코를 막고 달려갔다.[47] 요양소 근처 무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44] 인근 초등학교 교장은 굴뚝 연기가 결핵균을 퍼뜨릴까 봐 무섭다고 했다.[44] 노가타 마을은 도쿄시 요양소를 격리 병원으로 간주했다.[48] 마을사에는 "본래의 취지는 병원균을 살포하지 않도록 환자를 일정 장소에 격리하여 시민 전체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다.[48] 한편, 요양소 행사에 몰래 참여하거나 환자에게 물건을 파는 주민도 있었고,[43] 굴뚝 연기를 두려워했던 교장은 요양소 의사에게 결핵 강연을 의뢰하기도 했다.[44]

도쿄시 요양소와 같은 무료 결핵 요양소는 병상 부족으로 입원 대기자가 많았다.[49] 퇴원 후 재입원 신청이 많았고, 퇴원과 동시에 재입원 절차를 밟는 환자도 있었다.[49]

1923년부터 1924년에 걸쳐 철근 콘크리트 병동을 건설하던 중 관동 대지진이 발생하여 임시 병동을 급조했다. 1926년 철근 콘크리트 병동 완공 후 임시 병동 부지는 환자 피난소로 사용되었다.[39]

1929년 수용 정원을 870명으로 늘렸지만 입원 대기자는 줄지 않았고, 1930년 확장 공사를 통해 1932년부터 300병상 규모 병동을 추가하고 유료 환자 제도를 도입했다. 유료 환자 정원은 250명, 1인당 1일 1엔 50전을 징수했다.[50] 당시 도쿄시 요양소 환자 1인당 1일 실비는 1엔 50전 전후였다.[51]

1935년 무라오 의사 저서에 따르면, 도쿄시 진료소 입원 대기자는 1,000명이 넘었고, 대기 중 사망자도 많았다. 가든 홈, 휴원, 베타니아의 집, 정풍원 등 인근 민간 결핵 요양 시설도 항상 만원이었다.[52] 이 중 '''가든 홈'''과 '''휴원'''은 무라오 의사가 관여했고,[53] '''베타니아의 집'''은 프로자크 신부가 창설, 운영했다.[54] '''정풍원'''은 현재 나카노 에고타 병원이며,[55] 코로나19 감염으로 유명해졌다.[56] 1936년에는 '''무사시노 료엔'''이 결핵 병원으로 발족했다.[57]

중일 전쟁 시작 (1937년) 후 결핵 예방법 개정으로 공립 결핵 요양소 수용 대상이 "요양의 길이 없는" 환자에서 "환경상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있는" 환자로 변경되었다.[58][59]

태평양 전쟁 전시와 종전 후, 1942년 도쿄시 나카노 요양소, 1943년 일본 의료단 나카노 요양소, 1947년 국립 나카노 요양소로 명칭과 관할이 변경되었다.[34] 이 기간 동안 결핵 요양소는 전국적으로 한산했다.[58]

종전 후, 일본의 결핵 사망률은 급감했다.[40] 1950년 스트렙토마이신 국내 생산 및 공비 치료 제도 도입으로 화학 요법이 보급되어,[60] 초기에는 결핵 환자가 요양소에 쇄도했다. 1951년 국립 나카노 요양소는 "요양소 입소, 2, 3년 기다려야 한다"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58]

1960년대 삼자 병용 요법 확립으로 결핵 근본 치료가 가능해져,[60] 요양소 입원 환자는 감소했다.[34] 1967년 4월, 국립 나카노 요양소는 10층짜리 신 병동을 건축하고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으로 개칭했다.[61]

1968년부터 1970년까지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남쪽 부지에 '''후생성 나카노 숙소'''와 '''에고타 합동 주택'''이 건립되었다.[62] 에고타 합동 주택은 각 성 합동 공무원 숙소로, 11개 동, 4~5층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부지에는 피나무, 히말라야시다, 플라타너스, 대왕송, 주엽나무 등 수림이 있었고, 아이들은 사슴벌레, 풍뎅이, 꽃무지 등을 잡았다.[63]

2. 5. 에고타노모리 공원으로의 재탄생

1968년 도시 계획 "에고타노모리 공원"(약 3.4ha)이 결정되었다.[76] 1987년 4월, 기타에고타 공원이 홍수 조절지로 개조되어[77] 도쿄 도립에서 나카노구립으로 이관되었다.[76]

1993년 9월 말,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이 국립 국제 의료 협력 센터와 통합되어 폐쇄되었다.[38] 1996년 3월 8일, 나카노구·후생성·자경회의 삼자가 "구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의 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75] 광역 피난 장소, 도시 계획 공원, 도로 등을 정비하기로 합의했다.[75]

1998년 2월, 삼자는 "에고타노모리" 정비의 방향성에 대해 합의하고, 역사와 지역 특성을 고려하여 환경·경관·복지·방재에 배려하고 일체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75] 다음 달, 도시 계획 "에고타 공원"이 폐지되고, 새롭게 도시 계획 "기타에고타 공원"(6.0ha)이 결정되었다.[75] "기타에고타 공원"은 계획명이었고, 공원명은 "(가칭) 북부 방재 공원"이었다.[76]

2003년 4월, 나카노구가 병원 부지를 공원 용지로 취득하고,[76] 다음 달, 삼자는 "에고타노모리" 전체를 통일된 공간으로 경관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에고타노모리" 정비에 관한 기본 방침을 확인했다.[75]

2007년 4월, 에고타노모리 공원이 개원했다. 이는 기타에고타 공원 구역을 병원 부지로 넓혀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2] 구 국립 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의 수림을 살려[2] 구내 최대 규모의 수림을 남겼다고 한다.[6] 같은 날, 공원 남쪽에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와 도쿄 경찰 병원 간호 전문학교가 개업했다.[4][104]

2. 6. 에고타노모리 프로젝트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부지를 공유하던 에고타 연합 주택과 후생노동성 나카노 숙소는 43,770m2 면적의 국가 공무원 숙소였다.[62] 2006년 7월, 이 부지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결정되었고,[91] 2007년에는 숙소 폐지와 함께 부지를 활용하여 마을 기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검토되었다.[62] 2008년 3월, 국가 공무원 숙소 부지를 시노노메의 UR도시기구 소유지와 교환하면서 '''에고타노모리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91][92] 나카노구는 피난로 확보, 녹지 환경 보존, 양호한 주택 공급을 추진하도록 유도했다.[93]

2년 이상 거주자 이주 후, 2010년 12월에 숙소가 폐쇄되었다.[90][94] UR도시기구는 부지의 자연 환경 보전에 힘쓰겠다고 설명했지만,[95] 2013년 9월 택지 조성 공사 설명회에서는 중요 수목은 보존・이식하고, 그 외 기존 수목은 벌채한다고 설명했다.[96] 실제 공사에서는 많은 수목이 베어졌다.[94] 다만, 부지 동쪽 에고타 강변 수림은 에고타노모리 공원과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보존하고, 녹지, 산책로, 휴게소 등을 설치한 공원으로 정비한다고 했다.[96]

2013년 9월 택지 조성 공사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구 에고타 연합 숙소 부지("에고타 3초메 지구")는 2014년까지 UR도시기구가 택지 조성 공사를 하고, 2015년 이후 민간 사업자가 주택 건축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었다.[96]

2015년 3월, UR도시기구와 세키스이 하우스는 "에고타 3초메 지구" 사업 계획 개요를 발표하고, 분양 및 임대 맨션 등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녹지 활용"을 위해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연결되는 재래 수목 중심 식재로 새와 곤충들의 생태계를 배려한다고 밝혔다.[97] UR도시기구, 세키스이 하우스, 종합 도쿄 병원은 "에고타 3초메 지구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조직하고, 에고타노모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92] 이 프로젝트는 "다세대에 의해 길러지는 지속 가능한 지역을 만든다"는 콘셉트의 주택・의료・보육 시설 등의 복합 프로젝트였다.[98] 2018년 9월까지 시설군을 완성하고, 같은 달 23일에 "마을 열기"를 개최했다.[98]

3. 공원 시설

에고타노모리 공원 부지 내에는 6층짜리 대형 건물인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東京総合保健福祉センター江古田の森일본어가 있다. 공원에는 다목적 야외 공간, 수목 지역, 나무 놀이기구, 모래 놀이터, 그네, 분수대, 화장실(휠체어 접근 가능), 학습실, 벤치, 잔디밭, 비오톱 연못, 층층나무 언덕이 있다.
하마미즈키 언덕 (꽃말발도리 언덕)에고타노모리 공원 서쪽 끝에 있는 하마미즈키 언덕에는, 그 이름처럼 꽃말발도리(미국산딸나무)가 심어져 있다. 꽃말발도리는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상징이다.

1912년(메이지 45년), 벚꽃에 매료된 미국 대통령 부인들의 요청에 따라, 도쿄 시장 오자키 유키오미국에 3천 그루의 벚나무 묘목을 기증했다. 그 벚나무는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 심어져, 이후 세계 유수의 벚꽃 명소가 되었다. 1915년, 미국은 답례로 40그루의 꽃말발도리 묘목을 일본에 기증했다. 그 묘목은 히비야 공원과 노가타 묘포에서 길러져, 가로수로 심어졌다. 꽃말발도리를 길렀던 노가타 묘포는 1971년에 폐지되어 기타에고타 공원이 되었다. 이것을 확장하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에고타노모리 공원이다. 나카노구는 이러한 경위에 따라, 에고타노모리 공원을 개원하면서 꽃말발도리의 원목 후손을 도립 원예 고등학교로부터 양도받아, 공원 내 꽃말발도리 언덕에 심었다.

꽃말발도리 언덕 부근은 대지의 가장자리가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지역에 있던 국립 나카노 요양소가 쇼와 40년대에 신 병동을 건설할 때 배출한 흙을 폐기하여 쌓아 올린 흔적이다.

꽃말발도리 언덕에 있는 학습실의료 활동 지원실을 겸하고 있으며, 재해 시에 이용할 수 있는 자재와 기재 등이 보관되어 있다. 휠체어 대응 화장실을 병설하고 있다. 자연 관찰 그룹 '숲의 학급'의 관찰회는 학습실 앞에서 집합한다.
사토야마 (리산)의 수림공원 북부에는 리산(里山)의 수림이 있다. 숲의 상징인 아오기리가 자라고 있다. 수림 근처의 강가에는 에고노키가 자란다. 에고노키는 에고타(江古田)의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는 나무로, 5월경에 흰 꽃을 피운다[6]

리산의 수림에는 방재용 우물이 있다. 식수는 아니지만 생활 용수로 이용할 수 있다[6]

리산의 수림과 수수꽃다리 언덕 사이에는 숲 입구 광장, 숲의 작은 광장, 풀밭 광장 등이 있다. 이 부근에 자라는 은행나무수양버들은 도쿄의 가로수 원목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 잎은 도쿄도의 심볼이며, 수양버들은 긴자(銀座)의 버드나무 가로수길로 유명하다[6]。튤립나무의 큰 나무가 눈에 띈다. 외래종이므로 요양소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7]。 그 외 개성있는 수목으로는 타라요토치노키 등이 있다[6]
비오톱공원 중앙부에는 연못이 있으며, 그 하류의 개울과 함께 비오톱을 구성한다. 2008년부터 3년간 비오톱의 개울에서 반딧불이의 자연 번식과 정착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번식을 확인하지 못했다.

비오톱은 물이 가끔 마른다. 2020년 5월에도 말랐다.
잔디 광장에고타노모리 공원 부지 내에는 다목적 야외 공간, 수목 지역, 나무 놀이기구, 모래 놀이터, 그네, 분수대, 화장실, 학습실, 벤치, 잔디밭, 비오톱 연못, 층층나무 언덕 등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잔디 광장에는 여러 방재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6] 화덕 벤치는 재해 시 앉는 판을 떼어내 취사 화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잔디 광장 외에도 설치되어 있다.[6] 내진성 저수조는 소화 등에 사용되며, 물을 다 사용한 후에는 칸막이 패널을 조립하여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다.[6] 응급 급수조는 재해 시 지하 저수조에서 식수를 공급하며, 도쿄도 수도국이 시공했다.[6]

잔디 광장에는 일반 휠체어 대응 화장실 외에도 재해용 화장실이 있는데, 칸막이 패널을 조립하면 임시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다.[6]

히말라야시다의 큰 나무가 눈에 띄며,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상징이다.[7][13] 외래종이므로 요양소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7]
조절지 (구 기타에고타 공원 부분)에고타노모리 공원 조절지는 에고타 강(江古田川)의 홍수를 완화하기 위한 시설로, 공원 동쪽의 구 기타에고타 공원 부분에 설치되어 있다.[14] 다목적 광장, 소광장, 유아 광장이 조절지로 사용된다.[6]

평상시에는 빈 웅덩이이며, 웅덩이 바닥은 광장으로 이용된다. 폭우로 인해 에고타 강이 범람하면, 강의 물이 월류제를 넘어 공원 내로 흘러들어와 광장에 고인다. 이로 인해 강의 범람을 억제하고 하류 지역의 침수 피해를 방지한다.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자동으로 배수되지만, 조정지에 고인 물은 오염되어 있으므로, 배수 후에는 조정지 부분을 폐쇄하고 청소와 소독을 실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광장 재포장 등을 실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 폐쇄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14]

조절지는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1987년 4월 1일에 구립 기타에고타 공원으로 개원함과 동시에 조절지로서의 운용을 시작했다. 조절지의 면적은 약 9,200m2, 깊이는 최대 약 3m, 저류량은 최대 17,000m3이다.[14]

링크


조절지 옆에는 나카노구(中野区) 교육위원회에 의한 '''기타에고타 유적''' 안내판이 있다(#縄文時代の集落 참조).[15]
수림 광장에고타 강을 따라 조성된 수림 광장은 구 북강고타 공원 중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위치한다.[6] 수림 광장보다 더 남쪽에 있는 수림은 원래 에고타노모리 공원 밖이었으나, 에고타의 숲 프로젝트를 통해 에고타노모리 공원과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공원으로 정비되었다.[96] 이 공원에는 기존 수목을 보존하는 녹지, 산책로, 휴게소 등이 마련되어 있다.[96] 이 공원과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경계는 안내도에 따라 다르다.[16]
러닝 코스에고타노모리 공원을 둘러싸는 러닝 코스가 있다. 한 바퀴는 약 1,200m이며, 100m마다 거리 표시가 있다. 도로는 정비된 아스팔트로, 적당한 높낮이가 있다.[17] 그 외에 한 바퀴 500m의 조깅 코스도 있다.[17]

3. 1. 하마미즈키 언덕 (꽃말발도리 언덕)

에고타노모리 공원 서쪽 끝에 있는 하마미즈키 언덕에는, 그 이름처럼 꽃말발도리(미국산딸나무)가 심어져 있다. 꽃말발도리는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상징이다.

1912년(메이지 45년), 벚꽃에 매료된 미국 대통령 부인들의 요청에 따라, 도쿄 시장 오자키 유키오미국에 3천 그루의 벚나무 묘목을 기증했다. 그 벚나무는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변에 심어져, 이후 세계 유수의 벚꽃 명소가 되었다. 1915년, 미국은 답례로 40그루의 꽃말발도리 묘목을 일본에 기증했다. 그 묘목은 히비야 공원과 노가타 묘포에서 길러져, 가로수로 심어졌다. 꽃말발도리를 길렀던 노가타 묘포는 1971년에 폐지되어 기타에고타 공원이 되었다. 이것을 확장하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에고타노모리 공원이다. 나카노구는 이러한 경위에 따라, 에고타노모리 공원을 개원하면서 꽃말발도리의 원목 후손을 도립 원예 고등학교로부터 양도받아, 공원 내 꽃말발도리 언덕에 심었다.

꽃말발도리 언덕 부근은 대지의 가장자리가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은, 그 지역에 있던 국립 나카노 요양소가 쇼와 40년대에 신 병동을 건설할 때 배출한 흙을 폐기하여 쌓아 올린 흔적이다.

꽃말발도리 언덕에 있는 학습실의료 활동 지원실을 겸하고 있으며, 재해 시에 이용할 수 있는 자재와 기재 등이 보관되어 있다. 휠체어 대응 화장실을 병설하고 있다. 자연 관찰 그룹 '숲의 학급'의 관찰회는 학습실 앞에서 집합한다.

3. 2. 사토야마 (리산)의 수림

공원 북부에는 리산(里山)의 수림이 있다. 숲의 상징인 아오기리가 자라고 있다. 수림 근처의 강가에는 에고노키가 자란다. 에고노키는 에고타(江古田)의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는 나무로, 5월경에 흰 꽃을 피운다[6]

리산의 수림에는 방재용 우물이 있다. 식수는 아니지만 생활 용수로 이용할 수 있다[6]

리산의 수림과 수수꽃다리 언덕 사이에는 숲 입구 광장, 숲의 작은 광장, 풀밭 광장 등이 있다. 이 부근에 자라는 은행나무수양버들은 도쿄의 가로수 원목이라고도 한다. 은행나무 잎은 도쿄도의 심볼이며, 수양버들은 긴자(銀座)의 버드나무 가로수길로 유명하다[6]。튤립나무의 큰 나무가 눈에 띈다. 외래종이므로 요양소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7]。 그 외 개성있는 수목으로는 타라요토치노키 등이 있다[6]

3. 3. 비오톱

공원 중앙부에는 연못이 있으며, 그 하류의 개울과 함께 비오톱을 구성한다. 2008년부터 3년간 비오톱의 개울에서 반딧불이의 자연 번식과 정착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번식을 확인하지 못했다.

비오톱은 물이 가끔 마른다. 2020년 5월에도 말랐다.

3. 4. 잔디 광장

에고타노모리 공원 부지 내에는 다목적 야외 공간, 수목 지역, 나무 놀이기구, 모래 놀이터, 그네, 분수대, 화장실, 학습실, 벤치, 잔디밭, 비오톱 연못, 층층나무 언덕 등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잔디 광장에는 여러 방재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6] 화덕 벤치는 재해 시 앉는 판을 떼어내 취사 화덕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잔디 광장 외에도 설치되어 있다.[6] 내진성 저수조는 소화 등에 사용되며, 물을 다 사용한 후에는 칸막이 패널을 조립하여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다.[6] 응급 급수조는 재해 시 지하 저수조에서 식수를 공급하며, 도쿄도 수도국이 시공했다.[6]

잔디 광장에는 일반 휠체어 대응 화장실 외에도 재해용 화장실이 있는데, 칸막이 패널을 조립하면 임시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다.[6]

히말라야시다의 큰 나무가 눈에 띄며,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상징이다.[7][13] 외래종이므로 요양소 시대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7]

3. 5. 조절지 (구 기타에고타 공원 부분)

에고타노모리 공원 조절지는 에고타 강(江古田川)의 홍수를 완화하기 위한 시설로, 공원 동쪽의 구 기타에고타 공원 부분에 설치되어 있다.[14] 다목적 광장, 소광장, 유아 광장이 조절지로 사용된다.[6]

평상시에는 빈 웅덩이이며, 웅덩이 바닥은 광장으로 이용된다. 폭우로 인해 에고타 강이 범람하면, 강의 물이 월류제를 넘어 공원 내로 흘러들어와 광장에 고인다. 이로 인해 강의 범람을 억제하고 하류 지역의 침수 피해를 방지한다.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자동으로 배수되지만, 조정지에 고인 물은 오염되어 있으므로, 배수 후에는 조정지 부분을 폐쇄하고 청소와 소독을 실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광장 재포장 등을 실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 폐쇄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14]

조절지는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1987년 4월 1일에 구립 기타에고타 공원으로 개원함과 동시에 조절지로서의 운용을 시작했다. 조절지의 면적은 약 9,200m2, 깊이는 최대 약 3m, 저류량은 최대 17,000m3이다.[14]

조절지 옆에는 나카노구(中野区) 교육위원회에 의한 '''기타에고타 유적''' 안내판이 있다(#縄文時代の集落 참조).[15]

3. 6. 수림 광장

에고타 강을 따라 조성된 수림 광장은 구 북강고타 공원 중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위치한다.[6] 수림 광장보다 더 남쪽에 있는 수림은 원래 에고타노모리 공원 밖이었으나, 에고타의 숲 프로젝트를 통해 에고타노모리 공원과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공원으로 정비되었다.[96] 이 공원에는 기존 수목을 보존하는 녹지, 산책로, 휴게소 등이 마련되어 있다.[96] 이 공원과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경계는 안내도에 따라 다르다.[16]

3. 7. 러닝 코스

에고타노모리 공원을 둘러싸는 러닝 코스가 있다. 한 바퀴는 약 1,200m이며, 100m마다 거리 표시가 있다. 도로는 정비된 아스팔트로, 적당한 높낮이가 있다.[17] 그 외에 한 바퀴 500m의 조깅 코스도 있다.[17]

4. 주변 지역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는 도쿄도 지진재해대책조례에 의거한 광역 피난 장소 No.67의 명칭이다[99]。과거에는 국립요양소 나카노 병원 부지 일대라는 명칭으로, 2008년 시점에서는 면적 16.92ha, 피난 유효 면적은 7.89ha, 피난 계획 인구는 59,400명이었다[86]

2020년 현재,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외에,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도쿄 경찰 병원 간호 전문학교, 에고타노모리, 에고타 히카와 신사, 도후쿠지 등이 포함된다[100]。과거에는 자생회나 종합 도쿄 병원의 부지도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되어 있었다[101]

세 방향이 에고타노모리 공원에 둘러싸인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는 민간 사업자가 나카노구와의 PFI 사업을 통해 구유지를 임차하여 건설했으며, 공원 개원과 같은 날에 개설된 복지 시설이다.[4][102] 해당 사업자에 따르면 시설명은 에고타노모리 공원에서 유래했다.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그 한 구석에 우리 시설이 있습니다"라는 위치이며, 이 시설은 "공원 안에 있는 환경이 뛰어난 시설"이라고 한다.[4][102] 센터 내 시설로는 케어 하우스, 특별 양호 노인 홈, 데이 서비스 센터, 요양 노인 보건 시설 재활 센터, 통소 재활 센터, 방문 재활 센터, 장애인 지원 시설, 헬퍼 스테이션, 방문 간호 스테이션, 거택 개호 지원 사업소, 보육원이 있다.[103]

도쿄 경찰병원 간호전문학교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이다. 1929년 도쿄 경찰병원 개원과 동시에 그 부속 학교로 설립되었으며, 2007년 4월에 "에고타노모리"로 신축 이전했다[104]. 학교 동쪽 옆에는 '''나카노 에고타 하이츠'''가 위치해 있다[105]. 이곳은 자경회 주택 에고타 하이츠라는 이름으로 자경회가 건설한 공동 주택이다[106]. '''자경회'''는 주요 사무소를 사쿠라다몬 밖의 경시청 내에 둔 일반 재단법인으로, 도쿄 경찰병원 및 간호전문학교 운영 외에도 경시청 직원 복리후생 등을 담당하고 있다[107].

'''에고타노모리'''(일본어: 江古田の森)는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연계된 "마을"이다. 국가 공무원 숙소 부지에 조성되었으며, 광역 피난 장소로서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된다.[108] 2018년 9월 23일 "마을 열림"까지 다음 시설이 완공되었다.[98]


  • A 구획에는 531호의 분양 아파트인 '''그랜드 메종 에고타노모리'''가 위치한다.[98] 이 부지의 북쪽은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길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108] 아파트 현관에는 수령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튜울립나무 거목이 심어져 있다.[109] 이 나무는 이 지역에 요양소가 개설된 100년 전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외곽은 폭 13m 정도의 그린 벨트로 조성되어 있다.[109] 분양 아파트는 준공 후 2년 이상 판매 중이었으나,[110] 현재는 전 세대 완판되었다.[111]
  • B 구획에는 '''종합 도쿄 병원'''의 B동이 위치한다.[98] B 구획은 2012년 시점에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되었지만,[101] 2020년 현재는 제외되었다.[100]
  • C 구획은 계획 단계에서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로 불렸으며, 현재 임대 아파트, 복지 시설, 지역 교류 거점 등이 위치한다.[98]
  •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이스트''': 육아 가정을 위한 임대 아파트
  • '''마스토원 에고타노모리''': 학생·의료 종사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
  • '''그랜드 마스토 에고타노모리''': 고령자용 임대 주택
  • '''니치이 홈 에고타노모리''': 간병 서비스가 제공되는 유료 노인 홈
  • '''리브 인 랩''': 주민 및 지역 교류 거점
  • '''니지이로 보육원 에고타노모리''':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 내의 인가 보육 시설
  • '''니지이로 에고타노모리 학동 클럽''':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 내의 학동 클럽
  • '''패밀리마트''': 약국을 병설하는 편의점


에고타노모리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메인 스트리트는 차도 폭 6m, 동쪽 보도 폭 3m이며, 서쪽은 민간 사업자가 정비한 보도 형태의 공터이다. 평상시에는 주변 지역과 에고타노모리 공원을 잇는 도로로, 재해 시에는 피난소 (에고타 초등학교)와 방재 공원(에고타노모리 공원)을 잇는 피난로로 기능한다.[96] 메인 스트리트의 가로수는 수양벚꽃이며, 2018년 "마을 열림" 기념 식수도 수양벚꽃이었다. 수양벚꽃의 유래는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수양벚꽃과 같다 (#수양벚꽃 언덕 참조).[109]

남쪽에 위치한 에고타 히카와 신사는 1460년(간쇼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고사(古社)이다[112]。에고타노모리 공원은 겐로쿠 시대에는 오바야시(御林)라고 불렸으며, 이 신사의 진수(鎮守)의 숲이었다[24]

이 신사의 경내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정비에 관한 기본 방침 지도에서 "역사에 기억된 오픈 스페이스와 녹지"로 구분되어 있으며, "역사 속에서 지역의 생활과 밀착된 오픈 스페이스로 존재해 온 지역으로, 장래에도 보전되어야 할 녹지입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86]。경내는 녹색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1847년(고카 4년)에 건립된 구 본전이 가구라덴(神楽殿)으로 남아 있다[114]。구 사격은 촌사(村社)로, 에고타 마을이 없어졌음에도 에고타 촌사로 불렸다[113]。에고타의 진수사로서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매년 가을의 예대제는 지금도 성황리에 열린다. 심야까지 봉납되는 에고타 사자춤은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114]

도후쿠지

2012년 시점에서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되었지만 2020년 현재는 제외된 구역이 있다. 자생회와 종합도쿄병원의 부지가 그것이다.

에고타노모리 공원 남서쪽 나카노구 에고타 3초메 15번지에는 '''자생회(慈生会)'''가 위치해 있다.[69] 자생회는 과거 도쿄시 요양소에서 쫓겨난 결핵 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프로자크 신부가 창시한 단체이며, 현재는 이곳에서 각종 보건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69] 사회복지법인 자생회 본부 외에도 특별 양호 노인 홈, 노인 데이 서비스 센터, 경비 노인 홈, 방문 간호 스테이션, 헬퍼 스테이션, 케어 플랜 센터 등이 있다.[69] 자생회의 중심 시설이었던 자생회 병원은 2010년에 폐지되었고, 현재는 종합 도쿄 병원에 계승되었다.[68]

자생회와 같은 부지에는 그 관련 단체인 '''베타니아 수녀회''' 본부가 위치해 있다.[115] 이 수녀회의 수녀들은 자생회의 의료 복지나 자생회 관련 학교의 교육 등 사도직에 힘쓰고 있다.[116] 자생회 부지와 에고타 강을 사이에 둔 옆 부지는 나카노구 에고타가 아닌 네리마구 도요타마나카이며, 원래부터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 밖이지만, 이곳에도 자생회 관련 시설이 있다. 자생회가 운영하는 '''도쿠덴 보육원'''[117], 그리고 자생회 창시자 프로자크 신부의 노력으로 헌당된 '''가톨릭 도쿠덴 교회'''이다.[118]

4. 1.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



세 방향이 에고타노모리 공원에 둘러싸인 '''도쿄 종합 보건 복지 센터 에고타노모리'''는 민간 사업자가 나카노구와의 PFI 사업을 통해 구유지를 임차하여 건설했으며, 공원 개원과 같은 날에 개설된 복지 시설이다.[4][102] 해당 사업자에 따르면 시설명은 에고타노모리 공원에서 유래했다.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그 한 구석에 우리 시설이 있습니다"라는 위치이며, 이 시설은 "공원 안에 있는 환경이 뛰어난 시설"이라고 한다.[4][102] 센터 내 시설로는 케어 하우스, 특별 양호 노인 홈, 데이 서비스 센터, 요양 노인 보건 시설 재활 센터, 통소 재활 센터, 방문 재활 센터, 장애인 지원 시설, 헬퍼 스테이션, 방문 간호 스테이션, 거택 개호 지원 사업소, 보육원이 있다.[103]

4. 2. 도쿄 경찰 병원 간호 전문 학교

도쿄 경찰병원 간호전문학교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전문학교이다. 1929년 도쿄 경찰병원 개원과 동시에 그 부속 학교로 설립되었으며, 2007년 4월에 "에고타노모리"로 신축 이전했다[104]. 학교 동쪽 옆에는 '''나카노 에고타 하이츠'''가 위치해 있다[105]. 이곳은 자경회 주택 에고타 하이츠라는 이름으로 자경회가 건설한 공동 주택이다[106]. '''자경회'''는 주요 사무소를 사쿠라다몬 밖의 경시청 내에 둔 일반 재단법인으로, 도쿄 경찰병원 및 간호전문학교 운영 외에도 경시청 직원 복리후생 등을 담당하고 있다[107].

4. 3. 에고타노모리 (마을)

'''에고타노모리'''(일본어: 江古田の森)는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연계된 "마을"이다. 국가 공무원 숙소 부지에 조성되었으며, 광역 피난 장소로서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된다.[108] 2018년 9월 23일 "마을 열림"까지 다음 시설이 완공되었다.[98]

  • A 구획에는 531호의 분양 아파트인 '''그랜드 메종 에고타노모리'''가 위치한다.[98] 이 부지의 북쪽은 에고타노모리 공원과 길을 사이에 두고 접해 있다.[108] 아파트 현관에는 수령 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튜울립나무 거목이 심어져 있다.[109] 이 나무는 이 지역에 요양소가 개설된 100년 전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파트 외곽은 폭 13m 정도의 그린 벨트로 조성되어 있다.[109] 분양 아파트는 준공 후 2년 이상 판매 중이었으나,[110] 현재는 전 세대 완판되었다.[111]
  • B 구획에는 '''종합 도쿄 병원'''의 B동이 위치한다.[98] B 구획은 2012년 시점에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되었지만,[101] 2020년 현재는 제외되었다.[100]
  • C 구획은 계획 단계에서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로 불렸으며, 현재 임대 아파트, 복지 시설, 지역 교류 거점 등이 위치한다.[98]
  •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이스트''': 육아 가정을 위한 임대 아파트
  • '''마스토원 에고타노모리''': 학생·의료 종사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
  • '''그랜드 마스토 에고타노모리''': 고령자용 임대 주택
  • '''니치이 홈 에고타노모리''': 간병 서비스가 제공되는 유료 노인 홈
  • '''리브 인 랩''': 주민 및 지역 교류 거점
  • '''니지이로 보육원 에고타노모리''':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 내의 인가 보육 시설
  • '''니지이로 에고타노모리 학동 클럽''': 프라임 메종 에고타노모리 웨스트 내의 학동 클럽
  • '''패밀리마트''': 약국을 병설하는 편의점


에고타노모리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메인 스트리트는 차도 폭 6m, 동쪽 보도 폭 3m이며, 서쪽은 민간 사업자가 정비한 보도 형태의 공터이다. 평상시에는 주변 지역과 에고타노모리 공원을 잇는 도로로, 재해 시에는 피난소 (에고타 초등학교)와 방재 공원(에고타노모리 공원)을 잇는 피난로로 기능한다.[96] 메인 스트리트의 가로수는 수양벚꽃이며, 2018년 "마을 열림" 기념 식수도 수양벚꽃이었다. 수양벚꽃의 유래는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수양벚꽃과 같다 (#수양벚꽃 언덕 참조).[109]

4. 4. 에고타 히카와 신사

남쪽에 위치한 에고타 히카와 신사는 1460년(간쇼 원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고사(古社)이다[112]。에고타노모리 공원은 겐로쿠 시대에는 오바야시(御林)라고 불렸으며, 이 신사의 진수(鎮守)의 숲이었다[24]

이 신사의 경내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정비에 관한 기본 방침 지도에서 "역사에 기억된 오픈 스페이스와 녹지"로 구분되어 있으며, "역사 속에서 지역의 생활과 밀착된 오픈 스페이스로 존재해 온 지역으로, 장래에도 보전되어야 할 녹지입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86]。경내는 녹색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1847년(고카 4년)에 건립된 구 본전이 가구라덴(神楽殿)으로 남아 있다[114]。구 사격은 촌사(村社)로, 에고타 마을이 없어졌음에도 에고타 촌사로 불렸다[113]。에고타의 진수사로서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매년 가을의 예대제는 지금도 성황리에 열린다. 심야까지 봉납되는 에고타 사자춤은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114]

4. 5. 도후쿠지



도후쿠지

4. 6. 과거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였던 곳

2012년 시점에서는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에 포함되었지만 2020년 현재는 제외된 구역이 있다. 자생회와 종합도쿄병원의 부지가 그것이다.

에고타노모리 공원 남서쪽 나카노구 에고타 3초메 15번지에는 '''자생회(慈生会)'''가 위치해 있다.[69] 자생회는 과거 도쿄시 요양소에서 쫓겨난 결핵 환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프로자크 신부가 창시한 단체이며, 현재는 이곳에서 각종 보건 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69] 사회복지법인 자생회 본부 외에도 특별 양호 노인 홈, 노인 데이 서비스 센터, 경비 노인 홈, 방문 간호 스테이션, 헬퍼 스테이션, 케어 플랜 센터 등이 있다.[69] 자생회의 중심 시설이었던 자생회 병원은 2010년에 폐지되었고, 현재는 종합 도쿄 병원에 계승되었다.[68]

자생회와 같은 부지에는 그 관련 단체인 '''베타니아 수녀회''' 본부가 위치해 있다.[115] 이 수녀회의 수녀들은 자생회의 의료 복지나 자생회 관련 학교의 교육 등 사도직에 힘쓰고 있다.[116] 자생회 부지와 에고타 강을 사이에 둔 옆 부지는 나카노구 에고타가 아닌 네리마구 도요타마나카이며, 원래부터 에고타노모리 공원 일대 밖이지만, 이곳에도 자생회 관련 시설이 있다. 자생회가 운영하는 '''도쿠덴 보육원'''[117], 그리고 자생회 창시자 프로자크 신부의 노력으로 헌당된 '''가톨릭 도쿠덴 교회'''이다.[118]

5. 접근성

도영 오에도선 신에고타역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있다.[2]

에코다역 (7분), 네리마역 (19분), 나카노역 (20분)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2]


  • 버스 나카노역 북쪽 출구에서
  • 에고타노모리 행, 에고타노모리 하차 후 바로
  • 에고타역 행, 에고타 지역 센터 하차 후 도보 3분
  • 전철
  • 도영 지하철 오에도 선 신에고타역 하차 후 도보 10분
  • 세이부 신주쿠 선 누마부쿠로역 하차 후 도보 20분

6. 이용 규칙

에고타노모리 공원의 이용 규칙은 지역 단체에서 추천된 위원으로 구성된 에고타노모리 공원 운영 협의회에서 정한다.[2] 공원 개원 시간은 6시부터 23시까지이며, 이 시간 동안에도 이웃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이용해야 한다.[2] 공원 내에서는 금연이며, 재해 시를 제외하고는 화기 사용이 금지된다.[2] 자전거나 오토바이 출입은 금지되며, 개는 출입할 수 없지만 구 북 에고타노모리 공원 부분에서는 목줄을 채운 경우에 한해 이용 가능하다.[2]

그 외에도 야구, 축구, 골프 등은 금지되며,[18] 쓰레기는 각자 가져가야 한다.[18] 다른 이용자에게 폐가 되는 행위나 광고, 선전, 물품 판매 등 영업 행위도 금지된다.[18] 집회, 촬영, 행사 등을 위해 이용할 경우에는 구청에 연락해야 한다.[18]

참조

[1] 웹사이트 江古田の森公園 えごたのもりこうえん | 中野区公式ホームページ http://www.city.toky[...] 2016-11-28
[2] 웹사이트 江古田の森公園 えごたのもりこうえん https://www.city.tok[...] 2020-07-01
[3] 웹사이트 森の学級 http://egotanomori.c[...] 2020-07-14
[4] 웹사이트 ごあいさつ|施設紹介 https://www.kaigo-eg[...] 2020-07-01
[5] 간행물 江古田遺跡 II 発掘調査報告書 http://archive.nakan[...] 共和開発株式会社 2005
[6] 간행물 江古田の森公園パンフレット https://www.city.tok[...] 中野区 2020-07
[7] 웹사이트 795/1000 江古田の森公園(東京都中野区) https://nippon1000pa[...] 2020-07-04
[8] 간행물 江古田遺跡 I 発掘調査報告書 https://archive.naka[...] 中野区 1999
[9] 웹사이트 森の学級のブログ http://egotanomori.c[...] Niftyココログ 2020-07-03
[10] 뉴스 江古田の森公園におけるホタルの自然繁殖・定着へ向けた試行結果について https://kugikai-naka[...] 都市基盤部 道路・公園管理分野 2012-03-13
[11] 웹사이트 2月の観察会 2011/02/27 http://egotanomori.c[...] 2020-07-09
[12] 웹사이트 ビオトープが涸れました。2020/05/06 http://egotanomori.c[...] 2020-07-09
[13] 웹사이트 江古田の森公園 https://www2u.biglob[...] 2020-07-03
[14] 웹사이트 江古田の森公園調節池について https://www.city.tok[...] 2020-07-02
[15] 웹사이트 北江古田遺跡|中野区江古田の名所旧跡 https://tesshow.jp/n[...] 2020-07-05
[16] 문서 現地の案内図 https://www.google.c[...]
[17] 웹사이트 江古田公園ランニングコース https://sportsone.jp[...] 2020-07-04
[18] 웹사이트 中野区立江古田の森公園 http://blog.livedoor[...] 2020-07-10
[19] 문서 東京都遺跡地図情報インターネット提供サービス https://tokyo-iseki.[...]
[20] 뉴스 発掘トピックス詳細情報|江古田遺跡(平成26年6月上旬]) https://www.tef.or.j[...] 東京都埋蔵文化財センター. 公益財団法人東京都スポーツ文化事業団 2020-07-09
[21] 간행물 江古田遺跡Ⅲ 発掘調査報告書 https://archive.naka[...] 中野区教育委員会・共和開発株式会社 2005
[22] 웹사이트 北江古田遺跡 https://www.visit.ci[...] "" 2020-07-05
[23] 웹사이트 江古田遺跡4 http://sitereports.n[...] 奈良文化研究所 2020-07-09
[24] 서적 寺山考 http://archive.nakan[...] 中野区江古田地域センター編 1984
[25] 서적 江古寺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26] 웹사이트 江古田遺跡 https://www2u.biglob[...] 2020-07-09
[27] 서적 小川屋敷跡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28] 서적 草分け http://archive.nakan[...] 中野区江古田地域センター편 1984
[29] 간행물 江古田遺跡 I 発掘調査報告書 https://archive.naka[...] 中野区 1999
[30] 서적 국립요양소(나카노)의 유래의 진상 - 에고타무라의 농민 봉기? 환상의 에고타성? 연구 보고서 나카노구 에고타사담회 1982
[31] 서적 江古田旧地図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32] 서적 村の廃合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33] 서적 江古田片山小字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34] 간행물 景観の移り変わりから見た旧中野療養所の沿革 https://archive.naka[...] 中野区教育委員会・旧国立療養所中野病院跡地遺跡調査会 1999
[35] 웹사이트 江古田村用水 https://blog.goo.ne.[...] 2020-07-14
[36] 간행물 江古田今昔 https://archive.naka[...] 中野区江古田地域センター編 1984
[37] 서적 結核病は治る https://dl.ndl.go.jp[...] 1937
[38] 간행물 えごたの見どころ ガイドブック https://archive.naka[...] 中野区江古田地域センター編
[39] 간행물 東京市療養所 https://dl.ndl.go.jp[...] 東京市社会局編 1935
[40] 웹사이트 結核について https://www.jatahq.o[...] 2020-07-09
[41] 웹사이트 江古田の結核療養所 https://www2u.biglob[...] 2020-07-03
[42] 간행물 東京市療養所 https://dl.ndl.go.jp[...] 東京市社会局編 1935
[43] 간행물 療養所の裏山 https://dl.ndl.go.jp[...] 1935
[44] 간행물 結核恐怖病 https://dl.ndl.go.jp[...] 1935
[45] 논문 結核療養所反対運動と住民意識―大正・昭和前期における公立療養所建設反対運動を比較して― http://www.senshu-u.[...] 専修大学
[46] 간행물 東京市肺病診療所 https://dl.ndl.go.jp[...] 日本史蹟編纂会 1931
[47] 간행물 国立中野療養所と江古田の作家たち https://archive.naka[...] 中野区立中央図書館 2006
[48] 서적 武蔵野方町史 https://archive.naka[...] 中野区立図書館 1927
[49] 서적 荒野を行く : 療養と予防 https://dl.ndl.go.jp[...] 1935
[50] 간행물 東京市療養所年鑑 https://dl.ndl.go.jp[...] 1936
[51] 서적 荒野を行く : 療養と予防 https://dl.ndl.go.jp[...] 1935
[52] 서적 結核事業當面の一問題 https://dl.ndl.go.jp[...] 1935
[53] 서적 療養夜話 https://dl.ndl.go.jp[...] 1940
[54] 서적 療養夜話 https://dl.ndl.go.jp[...] 1940
[55] 웹사이트 病院のご紹介 http://nakanoegotahp[...] 2020-07-15
[56] 웹사이트 東京・中野の病院で87人感染確認 院内の感染計92人 https://www.asahi.co[...] 2020-07-15
[57] 웹사이트 ごあいさつ|社会福祉法人武蔵野療園 http://www.musashino[...] 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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